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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생각

볼링은 와인이다.

2022.04.04     By 300g

처음에 우습게 보고 시작했던 볼링을 어쩌다 보니 3년 동안 강습을 받았고 중간에 심각한 권태기도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지금은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 볼링은 와인과 많이 닮았다. 기초를 배우지 않으면 숨겨진 즐거움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처음 볼링을 접하면 그냥 볼을 굴려서 핀을 넘어 뜨리는 단순한 운동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진정한 재미는 어프로치에서 시작된다. 스텝을 시작하고 진자 운동으로 볼이 정점에서 멈추는 것을 느끼고 이 시점에서 어깨 근육의 힘이 아닌 중력의 힘으로 볼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중간에 완변한 릴리즈 타이밍을 찾는 것이다. 좋은 타이밍을 찾으면 릴리즈 순간에 손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느낌은 기초가 없으면 평생 모르고 지날 갈 수도 있다. 기초가 없이 잘 못된 방법으로 계속해서 연습한 볼링은 잠재적인 즐거움과 재능을 끌어내지 못하고 부상 또는 지속적인 통증을 유발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와인이 아무리 좋은 포도로 양조를 하고 오랜 시간 병에서 숙성 과정을 거쳐도 마지막에 부쇼네(Bouchonne)가 일어나면 고유의 풍미를 끌어 낼 수가 없는 것과 같다. 

 

** 부쇼네(Bouchonne): 불어의 병마개 부숑(Bouchon)에서 파생한 단어로 곰팡이에 오염된 코르크 마개의 냄새가 나는 것.

 

와인 향을 진심으로 알게 된 건 프랑스에서 1학기 교환학생으로 교양으로 와인 강의를 수강했는데 학생 개인 당 5유로 씩 모아서 교수님이 가져오신 와인 테스팅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날 강의실 복도는 꽃 향기로 가득했다. 처음으로 느낀 강렬한 와인 경험으로 그 후에 몇 달 동안 와인을 근처 마트에서 구매해서 마셔 봤지만 당분간 그 느낌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내가 준비가 안되어 있었거나 환경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와인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대중 매체에서 보여주는 이미지 뿐이었고 사실 그렇게 즐기지도 않았다. 수업에서 얻을 수 있었던 건 여러가지 포도 품종이 있고 프랑스의 각 지역마다 떼루아(Terroir)와 환경이 달라서 같은 포도 종이라도 맛이 다르고 와인은 유럽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양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떼루아(Terroir)는 마치 볼링의 레인과 같다.

 

볼링장마다 같은 오일 패턴을 깔아도 공과의 마찰이 다르다. 심지어 레인마다 다르다. 이 때 볼러는 오일 패턴에 따라 어프로치에 서있는 위치를 바꾸거나 다른 에임 스팟을 공략하거나 볼링공을 바꾼다. 훅성이 있는 볼링공 내부에는 대칭 또는 비대칭 코어가 자리 잡고 있고 외피에 따라서 훅성이 모두 다르다. 또한 지공 방법에 따라 같은 공이라도 특성이 달라진다. 볼러는 새롭게 나오는 볼링공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일반 볼링장에는 하우스 오일 패턴이 깔려 있어서 아마추어도 쉽게 적응할 수 있으나 프로 볼러의 경우는 다양한 오일 패턴을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오일 패턴을 공략하는 건  마리아주(Mariage)를 찾는 것과 같다. 마리아주(Mariage)는 사전적으로 남녀간의 결혼을 의미하고 음식과 와인의 궁합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많은 음식이 있고 아마도 더 많은 종류의 와인이 있어서 이 조합을 찾는 건 오일 패턴을 공략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쥐포와 레드 와인은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최근 볼링장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덤리스 또는 투핸드 볼링을 즐긴다. 엄지 손가락을 빼고 공을 굴릴 수 있어서 비교적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강력한 회전과 훅을 구사할 수  있다. 큰 이유는 PBA에서 투핸드 볼러 제이슨 벨몬트(Jason Belmonte)가 많은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존 볼링 트렌드가 바뀐 것이다. 사실 이 선수는 투핸드 뿐만 아니라 크랭커 스타일도 잘한다. 투핸드를 가장 잘하기 때문에 시합에서는 투핸드를 사용한다. 어떤 스타일로 볼링을 치던 기본이 잡혀 있으면 다양한 스타일로 볼링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다. 프로 볼러가 마이볼 뿐만 아니라 하우스볼을 사용해서 고득점을 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와인도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스파클링 와인, 디저트 와인, 포트 와인 등 여러가지 스타일이 있다. 기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다면 개인마다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와인이 있지만 당양한 와인을 충실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와인에 정답은 없고 때로는 다른 스타일도 알아야 자신이 좋아 하는 이유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3년 동안 볼링을 배웠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연습하러 볼링장을 찾으면 운이 좋아 종종 200점을 넘는 경우가 있다. 점수가 생각보다 높게 나오면 기분은 좋지만 점수보다는 공의 구질이 좋을 때 더 즐거움을 느낀다. 볼링장은 많고 다양한 레인과 오일 패턴이 있어서 그날의 점수보다는 공의 구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와인 역시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지식과 경험을 계속 한다면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자신만의 12사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00 rpm 이 넘는 묵직한 와인이 생각난다.